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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도전과 교회의 대응

김정건님 | 2011.01.16 06:17 | 조회 1363


현대사회의 도전과 교회의 대응

새물결 플러스, 2008

이정석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참신한 소수 종교집단으로서 한말 독립운동과 3.1운동을 주도하고 서구문화를 도입하여 한국을 현대화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한국사회로부터 경이와 흠모의 대상이 되어왔던 한국교회가 선교 2세기를 맞이하면서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1960년대 이후 급성장하면서 이제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중심 집단으로 부상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4분의 1이 한 분의 주님을 모시고 섬기며 영원한 그의 나라를 추구하면서 매 주일 모여서 헌신을 다짐하며 단결하고 어떤 것으로도 파괴하거나 분리할 수 없는 강력한 집단이 된 것이다. 어떤 종교 집단이나 정치 집단도 한국교회를 능가할 수 없다. 한국교회가 뭉치면 한국에서 못할 일이 없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한국교회는 동정이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견제와 저항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비판을 받게 된 것은 단지 거대 집단이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급성장하면서 발생한 교회의 세속화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성장 지상주의가 도덕적 불감증을 초래한 것이다. 교회를 성장시키면 모든 문제는 덮어지고 정당화된다. 성장에 취하고 성취에 들뜬 교회들은 교역자나 교인들이나 한결같이 자기 영화와 파워를 추구하며 십자가의 복음에는 실제적 관심이 없다. 목사들은 대물림을 생각하고 장로들은 헤게모니를 생각한다. 교회에서 거룩한 권징은 사라지고 정적 제거에 사용될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형 교회뿐 아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모든 교회로 확산되었다.

둘째는 교권주의가 편만하고 내분과 대립이 만연한 것이다. 파워의 추구는 자연히 교권주의를 야기하였고, 교회나 교단이 커질수록 더 큰 힘을 보고 욕심이 생겨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싸움이 더욱더 치열해지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교권 쟁탈전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에 실망하게 되었다. 오로지 하나의 주님, 하나의 교회만 존재할 뿐인데, 교권의 야욕을 가진 자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교회의 분열을 획책한 것이다. 불신자나 초신자들은 이런 싸움을 보면서 입으로만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교회에 등을 돌리게 되고, 심지어 적극적인 비판자들이 되기도 하였다. 이미 한국교회는 해방 후 진보와 보수로 양극화되었고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한 진정한 대화나 만남도 거부한다. 이러한 정치적 분열을 막아야 하는 신학자들도 상당수는 자기 학파나 교단 이데올로기를 섬기는 어용신학자들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에 저항한 양심적인 신학자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희생되기도 하였다.

셋째는 불건전한 신앙집단과 불신 집단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부흥운동과 신비주의가 한국교회의 수적 성장에는 일조하였으나, 한국교회의 건전한 성숙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사랑과 자유 보다는 체험과 효험을 중시하여 기복적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으며 기도의 내용을 고치기보다 많이 그리고 열정적으로만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미신적 신앙을 퍼뜨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고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노력보다 신앙의 이름으로 자기의 욕심을 더 키워나가도록 부추겼다. 이와 같은 초보의 미숙한 신앙인들은 자연히 성경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는 종교적 사기에 쉽사리 현혹되어 수많은 불건전한 이단적 집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몰상식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자행하고 심지어 가출과 가정 파괴를 결과함으로써 사회적 혐오대상이 되었고 자연히 한국교회 일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교회 내에 존재하는 불신 집단으로부터 왔다. 1960년대부터 서구에서 발생한 신자유주의가 한국으로 수입되어 진보적인 일부 신학자들과 목사들에게 전염되었다. 이들은 교회 안에 있었으나 점차 성경을 불신하게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육체적 부활, 그리고 재림과 내세와 같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을 상실하였으나 양심적으로 교회를 떠나기보다 교회를 바로잡는다는 미명 아래 남아서 한국교회를 불신화하는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 불신자들과 합세하여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서로 싸우며 정치적인 적수를 정죄하기보다 초대교회와 같이 삼위일체나 기독론적 이단을 단호히 정죄하고 불신집단을 교회 밖으로 축출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소수 신흥집단만을 대상으로 이단을 규정하지 말고 종교다원주의자들을 비롯하여 공공연히 기독교의 정통 신앙을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을 이단으로 공시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주님이 제정한 권징을 올바로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과 밖을 분명히 규정해야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2세기에 접어든 한국교회가 과연 1세기의 성장과 발전을 계속 유지하여 한국의 계속적인 복음화를 이루면서 부상하는 중국과 인도를 비롯하여 아시아 교회를 선교하고 지도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한 채 유럽교회처럼 점점 감소하고 쇠약해지는 세속화의 길을 걸을 것인지 중요한 분기점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교회가 주님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성결하게 하고 불신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중심 집단으로 부상한 한국교회가 겸허한 자세로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실천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성장주의 논리와 같이 어떤 결과나 효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결과와 관계없이 주님을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사회를 섬기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랑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정치, 경제, 문화, 매스컴, 학교, 의료, 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노력하되 불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방식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이 시대를 읽고 적응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복음은 불변하지만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상통할 수 없는 형식으로 전달되면 의사전달에 실패한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비판하고 저항하려고만 하지 말고 복음이 아닌 문화적 형식에 관한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사회를 추종하지 말고 인도해야 한다. 비록 부정적 세력이 저항하지만, 역사는 오늘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역사의 흐름을 시계추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실로 인류가 한 방향으로 너무 치우치면 하나님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균형과 발전을 이끄시는 것 같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성을 숭배하던 모던 시대의 잘못을 교정하고자 포스트모던 시대를 허락하신 것 같다. 새로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은총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의 완전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교회가 세상과의 영적 전투에 임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세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militant church)라고 부른다. 비록 우리의 영적 전투는 무력이나 폭력이 아닌 사랑과 진리의 방법을 사용하지만, 세속적인 전쟁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위험한 전쟁이다. 따라서 교회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세속적 평안과 영광을 추구하게 되면 교회는 무기를 버렸기 때문에 처참한 영적 패배를 결과하게 된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기보다 세상과 친밀하고 하나가 되려고 하는 세속화는 교회 내부에서 교회를 병들게 하고 쇠망하게 만든다.

현대의 영적 상황은 대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세계의 탈환과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 지난 2천년 동안 유럽이 세계교회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유럽의 완전 복음화를 이룩하고 위대한 기독교 문명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세계 전체를 식민통치함으로써 세계를 석권하였다. 그러나 약소국들을 무력으로 침략하고 지배하며 착취하면서도 아무런 신앙적 가책을 느끼지 못했던 영적 불감증이 유럽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이제 유럽을 탈출한 이민교회들, 즉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교회가 세계교회를 이끌고 있지만, 서구의 세속화는 계속 진행되어서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 들어섰다. 이제 교회의 중심은 서구세계에서 비서구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비서구세계도 세속화의 흐름(mega trend)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모든 비서구세계도 서구의 문화와 경제와 학문을 모방하려는 서구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바로 그 서구화 속에 세속화가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의 몰락을 야기한 질병들이 한국사회에도 상륙하고 있다. 과격한 성 혁명이 초래한 가정의 파괴와 동성애 운동, 지난 20세기 지구 전체를 강타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투쟁과 그로 인한 물질주의의 지배, 현대과학과 테크놀로지에 중독되어 유토피아를 꿈꾸며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과학만능주의, 무신론과 종교다원주의와 반기독교 운동의 부상, 건강한 인간성의 구현보다 폭력과 쾌락적 문화를 추구하는 반문화운동, 고도의 살상무기 개발과 테러리즘, 빈곤과 기아를 방치한 채 공상적인 프로젝트의 대규모 추진, 지구적 빈부격차의 심화와 무차별 산업화 등의 죄악들이 서구사회의 영혼을 파괴하고 이제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어둠을 향해 빛을 비추고 함께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교회도 한국사회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외부적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뿐 아니라, 한국교회는 교회의 내부적 세속화를 경계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속화되면 아무 희망도 없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내분을 가져온 교파주의와 교단분열을 회개하고 하나 되는 노력을 진실하고 겸허하게 진행하여야 한다. 교회의 내분은 전투적인 교회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또한 교회 리더쉽의 내분과 직분의 세속화를 극복하며 예배와 기도와 영성에 대해 올바른 성경적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개교회의 영광을 추구하는 허영을 회개하고 모든 교회와 강한 형제의식과 평등성을 실현하며 재래 종교에서 영향 받은 기복신앙과 신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내부적 결속을 강화하고 세속화된 부분들을 수술하여 건강을 되찾는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으며 21세기 세계 기독교의 주요한 전략적 교회가 될 것이다.

[현대사회의 도전과 교회의 대응 Church`s Response to the Postmodern Society 서문, 2008년 12월말 출간, 새물결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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